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조선초 도성건립과 배수물길을 위해 개천에 대한 정비작업을 진행했다. 태종때 자연천정비를 하면서 둑을 쌓아 하천의 모습을 만들고, 이후 세종때 지천과 세천에 대한 추가정비를 했으며, 청계천을 처음으로 생활하천으로 규정하였다.
오늘날의 청계천의 모습은 영조때 이르러 완성되었다.1760년(영조 36)과 1773년(영조49)때 두번의 개천정비작업을 진행하여, 개천의 폭을 넓히고,양쪽에 돌을 쌓고,수로를 직선으로 만들었다. 이는 인구증가에 따른 하천배수시설확장과 대규모 준척작업을 통해 일거리로 빈민들을 구휼함에 있었다.
일제시대 초기에 관리부족으로 지난 500년 동안 서울사람들의 생활과 함께 흘러온 청계천이 하수구로 전락하여,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총독부등 주요기관의 청계천이북이전을 위해 청계천 정비작업을 계획했었다.
광복과 전란이후 청계천지역은 슬럼화되었으며,위생과 도심경관의 개선을 목적으로 청계천 복개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1971년 청계천고가도로과 완공되고, 교통혼잡과 환경훼손의 문제가 심해졌으며, 고가도로의 유지보수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등 경제적 비효율성문제도 제기되었다
청계천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서울은 환경친화적, 인간중심적 도시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문화유적이 복원되면서 서울은 600년 역사성이 회복되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도시로 자리매김을 하며, 청계천은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찾는 휴식처이자 관광명소로 떠오르고있다. 청계천 복원으로 주변환경이 개선되고, 새로운 상권이 조성되고 있으며 서울은 동북아의 중심도시, 국제적인 상업도시, 금융거점 도시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복원 사업은 서울의 얼굴을 바꾸고 서울 시민들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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